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26일 시작됐다.
계획에 맞춰 예방 접종 순서가 짜이고 있지만,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백신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의 거리가 누구보다 멀리 느껴지는 사람들, 바로 이동이 어러운 ‘중증 장애인’ 이야기다.
“장애인이 코로나에 걸리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지난 3일 만난 중증 지체장애인 이상우(40) 씨는 코로나 백신 이야기가 나오자 대뜸 이 말을 했다. 매일 그가 마주하는 불안을 세상은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뇌병변 1급인 그는 혼자 마스크 착용도 불가할 정도로 거동이 어렵다.
그는 언어 장애도 있어 발음이 명확하지가 않다. 인터뷰는 문자를 음성으로 변화해주는 앱과 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다.
선천적으로 폐가 좋지 않아 이 씨는 수시로 마스크 속에서 쌕쌕거리는 소리와 마른기침을 쏟아냈다.
호흡기 기저질환이 있고 24시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활동 자체가 어려운 이 씨는 코로나 19 고위험군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접종 우선순위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정부가 내놓은 접종 계획에는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입소자·종사자 등 39만 명이 2분기 접종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다만, 시설이나 병원에 있지 않고 ‘집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발길 돌려야 했던 ‘선별 진료소’
지난 1년 동안 이 씨는 코로나19 방역과 먼 거리에 있었다.
이 씨는 감기만 걸려도 열이 39~40까지 자주 오른다. 지난 8월 열이 오르자 코로나 검사를 받아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엔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 아니라면 코로나 검사 시 소견서가 필요했다.
이 씨의 활동 지원사 홍석현 씨는 “전담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고 형(이 씨)과 인근 보건소를 찾았지만 ‘보건소 의사 소견서’가 아니라며 검사가 안 된다고 했다. 형이 휠체어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동안 5명이 검사를 받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기저질환이 있는 장애인이지만 배려는 없었다.
“그야말로 ‘선별’ 진료더라고요. 왜 형은 안되는 거예요?”

12월 대확산 때는 소견서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이 씨는 열이 올라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콜택시를 타고 가까운 선별진료소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발을 돌려야 했다.
컨테이너로 된 선별진료소 출입문은 좁고 높은 ‘턱’이 있어서 휠체어가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턱이 없는 곳을 겨우 수소문해 먼 곳까지 갔다 와야 했다.
이런 이유로 백신 접종 차례가 온다 해도 이런 기억 때문에 이 씨는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확진자와 마주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이 씨는 같은 처지에 있던 지체 장애인이 지난 연말 홀로 공포의 자가 격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혼자 생활이 불가능했지만 주어진 것은 비장애인과 동일한 음식물 등 생존 물품 키트 뿐이었다고 한다.
지난 해 봄, 지체 장애인의 ‘나홀로 자가격리’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지만 변한 것이 없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감염 위험 가능성도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이제는 평소 자주 타던 지하철 이용도 쉽지가 않다.
원래 기침이 잦은 그가 지하철에 타면 곱지않은 시선들이 몸에 내려 앉기 때문.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시선이 제일 무서워요. 욕하는 사람도 있고요. 아직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더라고요. 아직도…”
이 씨는 백신을 맞으러 갈 때는 발길을 돌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어렵지 않게 백신 맞고 싶어요’
시각장애인 김수경 씨도 백신 및 방역 대책이 좀 더 유연하게 짜이길 바라고 있다.
전맹(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에다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신장 장애를 앓고 있는 김 씨는 중증복합장애인에 속한다.
일주일에 3번 병원에서 25년 넘게 투석을 받아 온 김 씨에게 코로나 감염 두려움은 그 누구보다 크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면역력도 약한 그에게 바이러스는 더 치명적으로 느껴진다.
“저는 코로나19 백신을 어서 맞고 싶어요. 그런데 그보다 접종 방식을 고려해주면 좋겠어요.”
김 씨는 지난 독감 예방 접종 당시 겪었던 일을 회상했다.
독감 접종 안내문을 받았지만, 막상 이틀에 한 번꼴로 투석을 받기 위해 가는 병원에서는 ‘무료 접종’이 불가했다.
보건소 역시 다니는 병원 근처로는 선택할 수 없었고, 지정된 곳으로 가야만 접종이 가능했다.
결국 김 씨는 구청과 병원 등을 수소문해 어려움을 호소했고, 기다림 끝에 투석 병원에서 독감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아우성을 쳤다”고 묘사했다.
“긴 시간 투석을 하고 보건소까지 멀리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아요.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는 어려움이 더욱 큽니다. 신장 환자들은 투석하는 병원에서 접종을 시켜주는 등 좀 더 용이하게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좋겠어요.”
그는 백신을 맞으러 가기가 힘든 사람들을 위해 ‘찾아오는 백신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실제로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보건 당국이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과 고령자들을 위해 백신 버스 등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코로나19의 불행을 다음에 ‘복·붙’하지 않으려면
한국 질병청이 내놓은 백신 계획에도 거동이 어려운 요양시설 환자를 고려해 찾아가는 ‘방문 접종’을 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시설에 거주하지 않는’ 장애인 등을 이들에게 맞춰진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현 코로나19 대책 시스템이 지나치게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맞춰져 있다고 지적한다.
사단법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연) 김성연 사무국장은 BBC 코리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년이 지났지만, 관련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국장은 “최근까지도 장애인이 확진되면 갈 곳이 없거나, 제대로 장애 유형에 맞춰진 치료 시설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자가 격리 대상자가 되면 인력 지원이 없어 홀로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들은 이렇게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접종 순위’라도 고려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지난해 6월 보건당국은 공식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만들면서 자가격리 중인 장애인에게 활동 지원이 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하지만 김 국장이나 현장에서 들은 장애인들은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간 민간 단체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목소리를 당국도 인지는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가족·돌봄인력 등의 코로나19 확진에 따라 장애인 등이 격리되는 경우 돌봄인력을 제공, 연계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달 현장에서 이를 잘 알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 긴급돌봄 지원에 대한 홍보도 강화한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된 시점에서, 장애 유형에 맞춰 보다 잘 짜여진 감염병 대응 체계가 만들어질 때라고 강조했다.
“백신을 맞는다고 해도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고 있고 이후 또 다른 다른 바이러스가 나올 수도 있겠죠. 이번 고비를 넘기더라도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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