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쇼’를 취재해 온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석 달은 험난했다.
현명한 발언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어느 밤 말한대로 트럼프에서 조 바이든으로의 전환은 매일 같이 마약을 하다 저알코올 맥주를 일주일에 한 번 마시는 것과 같았다.
이제 백악관의 일일 브리핑은 정말 지루하다. 싸움도 없고, 누구를 모욕하는 일도 없다.
한밤중에 부는 트위터 광풍도, 포르노 스타에게 돈을 지급하는 일도, 트럼프의 정치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시위도 없다.
이 모든 게 바이든 행정부가 지루했다는 뜻일까? 절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나는 그의 대통령직 수행이 아주 멋지기까지 했다고 말하고 싶다.
순전히 이기적인 관점에선 바이든의 대통령직 수행이 화려한 TV쇼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슬플 뿐이다. 사실 나는 지난 4년간 트럼프가 벌인 쇼 때문에 배불리 먹고 살았다.
트럼프는 늘 비주얼적이고 황당무계한 것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지를 알았다. 반면 바이든은 본인의 가식없는 면을 음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말 자체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바이든이 (78년 인생 전부를 통틀어 볼 때) 과도기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치적 대립을 완화하고, 분열된 국가를 치유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싸움을 제거하고, 백신 접종을 늘리고, 분열된 정치적 지형에서 독소를 빼는 것 등이 우리가 바이든에게 기대했던 것이다. 그가 이를 넘어선 일을 할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주로 기술전문가로 내각을 구성했고, 이들은 주로 관리 업무를 수행할 것으로 생각됐다. 철도 운행시간을 조금 개선할 뿐, 철도 산업의 규모는커녕 철도 차량을 싹 바꿀 것이라고도 암트랙 차량에서 내리는 조 바이든 예상 못했다. 미국 공영철도회사 ‘암트랙’을 즐겨타는 ‘암트랙 조’에게 딱 어울리는 야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그에 대한 모든 걸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 바이든은 단순히 과도기적인(transitional) 대통령이 아니라 변화를 이끄는(transformational)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이 단어엔 긍정 또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지 않다. 이는 그저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봐온 그의 야망에 기반한 진술일 뿐이다. 좋든 싫든 이제 곧 유권자들이 결정할 것이다.
1조9000억달러(약 2102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부터 살펴보자.
이 거대한 법안이 통과되자 미국 성인 대부분이 코로나19에 따른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도록 1400달러어치 수표를 받게 된다는 헤드라인이 신문을 장식했다. 이는 많은 미국인들의 손에 쥐어주는 현금이었고, 민주당과 공화당 유권자들의 엄청난 동의를 얻었다. 비록 어느 공화당 의원도 그 법안을 지지하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동영상 설명,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100일 동안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세운 5가지 계획
하지만 헤드라인 너머 정책을 자세히 살펴보자. 살펴볼 것이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아마도 자녀세액공제 확대일 것이다. 빈곤층 가구는 곧 아이 한 명당 최대 연 3000달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조치 하나로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 이 조치는 올해만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백안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바이든이 이 조치를 영구화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건 사회 정책의 주요 부분이고 아주 큰 이슈다.
바이든은 ‘미국 구제 패키지’로 불리는 경기부양책이 통과되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느낀 것을 자신이 집권하면 바로잡고 싶어했다. 오바마는 2009년 집권 후 금융위기의 혼란을 물려받으면서 다양한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돌이켜보면 너무 신중했고 야심이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바이든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부통령을 수행하면서 깨달은 건 좋은 위기를 헛되이 낭비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은 바이든이 거대한 경기부양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명분을 줬고, 결국 법안은 통과됐다.
이제 그가 미국의 인프라 재건을 위해 계획하는 정책들을 보자. 규모는 수조달러가 될 것이다. 바이든의 야망은 상당할 것이다. 단순히 교량이나 도로의 보수뿐 아니라(이 역시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더 공정한 디지털 접근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바이든이 피츠버그 외곽의 한 연설에서 “이건 주변부를 맴도는 계획이 아니고, 미국에서 한 세대에 한번 나올 법한 투자”라고 말했다.
물론 공화당원들에게는 이건 전형적인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다. 고속도로 보수 등 도시를 재건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바이든이 추진하고 싶어하는 인프라 재건 계획은 끝이 없다. 단기적으로는 일자리 수백만 개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경쟁력 강화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인종 평등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더 깨끗한 새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은 미국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지난 주 바이든이 워싱턴에서 개최한 온라인 기후정상회담과 그가 야심차게 설정한 기후변화 관련 목표들을 보라. 이건 안정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내놓을 만한 조치가 아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2% 감소했다는 건 엄청난 과제다.
바이든이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계획은 미국인들이 운전방식하는 방식, 그들이 집을 난방하거나 냉방하는 방식,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게 할 것이다. 이 계획이 미국의 야망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건 엄청난 야망이 맞다.
물론 바이든의 쇼핑 목록에는 분명히 따뜻한 모성애와 맛있는 애플파이도 있다(즉, 좋은 점도 있다). 또한 이 법안은 아직 의회도 통과하지 못 했다.
여담이지만 사실 첫 100일에 초점을 맞추는 건 약간 우스운 일이다.
첫 100일은 앞으로 임기 동안 무엇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기간이다. 일종의 계약금 지불 기간이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아무리 100일 동안 빛나는 업적을 이뤘어도 1360일 동안 일을 ‘개떡같이’했다면 누가 신경쓰기라도 할까?
정리하자면 바이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거대하다. 이게 ‘늙고 재미없는’ 조 바이든을 매우 흥미롭게 만든다.
이것은 블로그 칼럼이지 책이 아니다. 다만 지난 40년 동안 미국 정치의 지배적 기조는 낮은 세금과 경제 규제 완화, 균형예산, 경쟁 장려, 노조 축소 등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작은 정부였다.
영국 대처리즘 영향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 이후 빌 클린턴과 오바마 정부가 있었듯이 영국에는 대처 사망 후 13년 동안 노동당 정부가 있었다. 그러나 분명 영국 정부는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지배적이었던 통화주의 경제학자들(밀턴 프리드먼, 시카고학파, 래퍼 곡선, 앨런 월터스)의 정통성 안에서 작동했고 정의됐다.

바이든이 믿는 대로 오바마의 구제책이 충분치 않았다면, 그 이유는 오바마가 공화당 내 강경보수 세력 ‘티파티’의 파괴적이고 커져가는 힘을 봤기 때문이다. 앞서 클린턴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다소 난해한 ‘제 3의 길’을 통해 자신들의 승리를 향한 여정을 봤다. 시장경제의 메커니즘 안에서 최대한의 평등을 실현해 보자는 접근이었다.
1980년대 영국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이 모두 사기가 꺾인 후 그들은 다시 승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클린턴과 블레어는 세금 인상과 ‘큰 정부’ 공약이 그 추세를 뒤집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좋든 나쁘든 코로나19와 미국의 열악한 인프라 사정을 이용해 미국인들에게 “큰 정부가 돌아왔다”고 단언하는 것 같다. 공화당은 여전히 트럼프 이후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그들이 싸울 준비가 돼 있는 영역이다.
바이든의 전 여론조사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이 이 야심찬 계획을 위해 부유세 인상을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획기적인 일이고 매우 큰 도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코로나19 대응, 경기부양, 인프라 계획 등 바이든이 승부를 보기로 선택한 분야에서 그의 지지율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남부 국경에서 빚어지고 있는 혼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바이든은 이제서야 이를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또 지속되는 총기규제 이슈에 대해선 많은 말이 있겠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입법을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현재 미국 상원은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이 50석씩 균등하게 나눠갖고 있다.
바이든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고수하는 등 백악관 내 ‘슈퍼전파 사태’가 벌어졌던 트럼프 시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과의 면담은 사회적 거리를 지키면서 이뤄지고 있고, 기타 방역 수칙도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흥미로운 회의가 열렸다.

대통령 역사학자 존 미첨은 바이든이 간절히 주최하고 싶어한 자리에 자신의 저명한 동료들을 많이 데려왔다. 대통령 취임 후 6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에 바이든은 이미 그의 유산과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대통령 권한의 한계, 전임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 등에 대해 고민했다”
이 중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학자인 도리스 컨스 굿윈에게 바이든은 “제가 프랭클린 대통령은 아니지만…”이라면서 운을 뗐다.
바이든은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나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이 승리로 이끈 빈곤과의 전쟁, 인종차별 철폐 정책처럼 지금이 자기만의 유산을 남길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선 기간 트럼프는 “바이든이 40년 이상 정치를 해 왔지만, 지금껏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줬냐”며 조롱했다.
이제 권력을 쥔 바이든은 그 질문에 아주 분명한 대답을 하려는 것 같다. 비록 그 대답이 아주 대단한 ‘쇼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사회복지 (쇼셜서비스) 또는 위의 칼럼내용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신가요?
궁금한 점 문의는, 카톡에서 ‘시니어월드’를 검색후 친구를 맺고, ‘하이’라고 인사말을 남기신 후 질문하세요.
또는 아래 양식을 작성하여 보내주시면, 성심껏 안내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