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중순,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들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짐을 풀기 시작했다. 여행 일정에는 의외의 장소가 포함돼 있었다. 바로 민간 의료 클리닉이었다.
이 여행객들은 모스크바의 세계적인 관광명소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다만 세계에 널리 알려진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여행객 대부분은 독일 시민들이었는데, 이들은 독일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너무 느려 절망한 상태였다. 그 중 한 명은 베를린에서 온 엔노 렌제였다.
렌제는 “독일에서는 백신을 금방 맞을 기회가 없었다”며 “의사에게 접종 차례가 언제냐고 묻자 그는 아마 10월이나 11월에 1차 접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고 BBC에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스푸트니크V가 누구에게나 무료로 제공된다. 다만 관광객은 개인 진료비로 200~220유로(한화 약 27만2000원~29만9000원)를 지불해야 한다.
노르웨이 여행사 월드 비지터는 러시아 이른바 “백신 관광 패키지”를 제공한다. 의료 초대장과 백신 예약부터 항공편, 환승, 숙박까지 백신 관광객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한다.

이 여행사는 1·2차 예방접종을 위한 단기체류 2회 또는 1·2차 접종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장기체류 1회 등 여러 패키지를 제공한다. 관광객들은 러시아에 입국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72시간 전까지 코로나19 신속 진단 음성 결과지를 제공하는 한,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월드 비지터 공동 소유주인 알버트 시글은 첫 단체 관광객 43명이 지난 4월 16일 러시아에 도착했으며, 이후 600명 이상의 백신관광 예약을 받았다고 BBC에 말했다.
’헷갈리는 규정’
렌제는 역사 박물관인 베를린 스토리 뮤지엄의 관장이지만 코로나19 감염이 심한 이라크 쿠르디스탄에 자주 가서 난민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 활동가들은 독일에서 백신을 맞을 자격이 있지만, 그는 자원봉사로 일하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못한다고 했다.
렌제는 “백신 관련 규제들은 때때로 정말, 정말 이상하고 나는 그 규제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 백신 관광을 예약할 당시 70세인 자신의 아버지가 여전히 백신 예약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독일의 접종 우선순위 체계를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백신 접종이 “굉장히 느렸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예방접종 수급 불균형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타국에서 백신을 맞을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세르비아,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심지어 몰디브 제도 등 다양한 여행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인도양에 있는 천국의 섬으로 불리는 몰디브는 방문(visit), 예방접종(vaccination), 휴가(vacation), 즉 ‘3V’로 불리는 여행 패키지를 도입할 계획이다.
몰디브 관광부는 BBC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3V 캠페인은 세계가 봉쇄된 상황에서 몰디브를 방문하기로 한 관광객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백신 접종 증명서가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본국에 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태생적으로 지리가 분산된 섬이기 때문에 운이 좋은 편”이라며 “우리의 휴양 리조트들은 검증된 안전 수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비아는 과잉 공급으로 남는 백신을 최근까지 외국인들에게 공급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이를 중단하고 대신 자국민들의 백신 접종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과 같이 이민자와 미등록 인구가 많은 주에 백신을 맞으려는 캐나다인과 남미인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백신 접종과 검역에 관련한 규정이 느슨한 틈을 탄 것인데, 이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플로리다에는 부유한 미국인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데, 이곳에선 65세 이상의 사람들이 거주권 여부와 상관없이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멕시코 TV 진행자로 올해 73세인 후안 호세 오리겔은 햇살 좋은 플로리다 주도(州都) 마이애미에서 접종을 받고 느낀 행복과 안도감을 130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들과 공유했다.
그는 “감사합니다 #미국. 우리 멕시코가 내게 그런 안전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슬픈가”라는 트윗을 지난 1월에 남겼다. 당시는 멕시코에서 의료진과 일선 근로자들이 백신 접종을 받기 전이었다.
’도덕적 의구심’
그러나 소셜 미디어에서 백신 관광을 자랑했던 사람들은 큰 비난을 받았다.
산업트렌드 분석기관 글로브트렌더는 “백신 VIP”라는 표현을 처음 만들어 “백신 접종 대기행렬 앞으로 가는 방법을 구매하는 새로운 종의 엘리트 관광객”을 설명했다.
글로브트렌더는 전 세계 백신 유통의 불균형을 고려하면 백신 관광은 도덕적 의구심이 드는 변화라고 기술했다.
지난 1월엔 런던의 호화 여행사 나이츠브리지 서클이 무려 4만파운드(약 6322만3000원)에 호화로운 두바이 백신 관광 휴가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서비스는 여행사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었는데, 회원들은 이미 “여행 및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용도로 초대 전용 회원권 값인 2만5000파운드를 매년 지불하고 있다.
’윤리적으로 정당’
세계보건기구(WHO)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광범위한 감염 가능성을 예상하는 시나리오에선 위험에 직면한 의료 종사자들에게 먼저 백신을 맞혀야 한다.
WHO는 그외 각국 정부에 노인 및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계층을 우선 접종하라고 촉구해왔다. 감염 정도가 덜한 시나리오에서는 다른 집단을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추가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직업상 필수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WHO는 지역 내 감염 사태를 대비해 충분한 백신 공급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백신을 제공하는 나라에서 백신 공급은 문제가 아닌 듯하다. 아나 브르나비치 세르비아 총리는 외국인들에게 백신 접종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세르비아에 있는 수천 개의 백신을 낭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세르비아인들은 백신 안전성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다.

몰디브에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관광산업 종사자들의 접종 비율은 99% 수준이다.
한편 국제사회 이슈 데이터 연구기관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 인구의 8%만이 1차 접종을 마쳤기 때문에 러시아는 자국민의 스푸트니크V 접종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스푸트니크V는 현재 60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시글은 스푸트니크V는 러시아에서 누구나 접종받을 수 있고 “백신을 빼앗긴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의 모스크바 백신 관광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말한다.
월드 비지터는 자사 웹사이트에 백신 관광을 할 여력이 되는 독일인이 타국에서 백신을 맞으면, 독일 내 백신 접종 대기행렬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라고 적었다.
시글은 백신 관광이 자신들의 생명줄이라며, 전염병으로 사업이 중단된 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에는 사실상 할 일이 없었다”며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아무것도 안 하거나, 아니면 백신 관왕을 진행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한 달에 최대 1800명의 사람들이 예방접종을 일찍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현재 전염병 상황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우리에게 희망의 씨앗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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