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을 하는데 죄인이 됐다.”
예비 신혼부부들이 서울 시내에서 비대면 트럭 시위에 나섰다.
19일 전광판이 달린 트럭 한 대가 서울시청 광장 주변을 맴돌았다.
전광판에는 “웨딩홀 면적과 여건 고려 없이 무조건 49인?” “형평성 고려해 결혼식 인원 제한 수정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트럭 시위에 나선 이들은 바로 예비부부, 신혼부부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 ‘전국신혼부부연합회’다.
7월에 결성됐지만 벌써 3000명이 넘는 예비 신혼부부들이 모였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정책과 관련해 ‘방역 지침의 형평성’을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백화점이나 뷔페 등 다른 다중이용시설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결혼식장에만 유독 엄격한 인원 제한을 두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
연합회 관계자 A 씨는 BBC 코리아에 “이 시국에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 결혼을 하는데 이 시국이 돼 버린 것”이라며 “왜 유독 결혼식장에서만 심한 규제가 있는지 불합리한 부분들로 인해 많은 예비부부들이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거리두기 4단계에서 종교시설은 최대 99명, 콘서트장은 최대 200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마트와 백화점은 인원제한 규정이 없다.
반면, 예식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부터 양가 하객을 모두 합쳐 총 49인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하객 49명을 누구로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청첩장을 언제 찍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다.
10월에 결혼식을 앞둔 권나영 씨 역시 지금 결혼을 알려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권 씨는 “지금 일단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 준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모든 게 멈춘 상태”라며 말했다.
그는 “대체로 결혼 준비를 일 년 전이나 늦어도 6개월 전에는 하게 되는데, 정부가 하반기에는 백신도 맞고 좀 (방역이) 된다고 했기 때문에 맞춰서 준비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식장 vs. 신랑 신부 싸움만 붙이고 있다’
예비 신혼부부들은 결혼식 일정 연기나 인원 제한으로 생기는 식사 비용 손해를 모두 떠맡는 것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보증 인원’은 예식장 측이 요구하는 기본 참석 하객 수로, 평균 200~350명이다.
정부가 하객 수는 49인 이하로 제한했지만, 예식장에서 요구하는 보증 인원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예비부부들은 예식장과의 갈등 속에서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씨는 “지금 (정부가) 식장과 신랑·신부 싸움만 붙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인원 제한을 풀어주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조치를 취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오는 28일 결혼을 앞둔 황규성 씨 역시 결혼식을 연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했다.
“실제 모실 수 있는 하객 수는 49명으로 제한됐는데, 계약돼 있는 비용은 다 지급을 해야 된다는 게 가장 애로 상황이죠. 결혼식이 다가오는데, 정부 지침은 계속 바뀌고 식장은 안된다고 하니까요.”
‘결송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결송합니다’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코로나 시국에 결혼해서 죄송하다는 의미로, 축복을 기대하기보다는 눈치를 봐야 하는 예비부부들의 상황을 드러내는 말이다.
황 씨는 “결혼하는 당사자들도 피해지만, 코로나라는 불안함을 안고 참석하셔야 하는 분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첩장을 드리는 신랑 신부 입장에서는 이 시국에 결혼하는 건 축의금을 받으려고 결혼을 한다 이런 분위기밖에 안되니까 답답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지난 12일 올라온 ‘결송합니다라는 단어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인은 “1년 이상을 준비해오는 결혼식이지만, 코로나19 시국의 결혼은 축복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예비부부의 욕심으로 치부돼 ‘결송합니다’라는 단어마저 생겼다”라며 “이런 단어가 생겼다는 사실이 예식을 앞둔 사람으로서 슬픈 현실”이라고 적었다.
이어 “억울한 위약금마저 예비부부들이 떠안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혼 관련 분쟁에 대해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시기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연장된 거리두기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0일 현행 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3단계 거리두기를 2주간 연장한다고 밝혔다.
3단계부터 결혼식 하객은 똑같이 49명으로 제한된다.
당국은 마트 등 다른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서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지만, 결혼식의 경우 ‘사적 모임’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거리두기 4단계에서 사적 모임은 오후 6시 이전에는 4명까지, 이후에는 2명까지 가능하지만 결혼식의 경우 예외를 뒀다는 설명이다.
연합회는 23일까지 총 닷새 동안 서울시청 및 중앙사고수습본부 앞에서 ‘트럭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BBC NEWS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