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미국 대선의 주요 쟁점은 팬데믹과 대법관, 경찰 개혁 등이지만 미국인 수백만 명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이드 플러리(24)는 최근 한 친구와 나눈 대화를 읽으며 “소리내서 말하면 다들 미친 소리라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주방 식탁에 앉아 화상 통화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텍사스 휴스턴의 뜨거운 가을 열기를 가라앉히려 냉방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제이드의 친구는 큐어넌(QAnon) 관련 인스타그램 영상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와 기업, 언론 내 사탄 아동성애자 집단과 비밀스러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근거 없는 내용이었다.
큐어넌은 계속된 음모론 제기로 최근 미국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집단이다.

민주당 엘리트들이 아동 납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에 애써 맞서다 그는 결국 포기했다.
제이드는 “친구는 분명히 그 집단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면서 “왜 기자들이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지 않느냐고 물어 왔다”고 했다.
사실 기자들은 이미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큐어넌이 주장하는 몇 가지 팩트가 있긴 하지만, 핵심은 허구다.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없다.
이 가짜뉴스는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과 에잇챈(8chan) 등 일부 극단적 게시판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단순한 장난이나 우스갯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곧 트럼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토끼굴’ 선거
제이드의 친구는 우리가 평소 뉴스에서 듣는 것과는 다른 선거 관련 이야기들을 하는 미국인 수백만 명 중 하나다.
이 ‘토끼굴’ 선거는 음모론과 소문, 의혹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휴스턴에서 1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톰 롱(68)은 SNS를 조금 다른 용도로 쓴다. 인스타그램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운영하는 지역 정치 페이스북 그룹은 각종 음모론으로 뒤덮여 있다.
“스크롤을 내리면 큐어넌에서 퍼온 각종 헛소리들이 이어지죠. 매일 심해지고 있어요.”

톰은 플로리다에 사는 자동차 관련 일을 하다 은퇴했다. 매일 아침, 그는 정원을 한 번 둘러보고 자전거를 한 바퀴 타고 온 다음, 자리에 앉아 페이스북 그룹에 올라온 가짜뉴스들을 삭제한다.
조 바이든 후보와 민주당의 조직적 아동 학대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 없는 영상들, 트럼프 대통령이 ‘엘리트 아동 인신매매범’들로부터 모두를 구할 유일한 사람이라는 주장 등이다.
톰은 “이같은 주장들은 완전한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음모론, 대세가 되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파 또한 근거 없는 음모론에 넘어갈 수 있다. 조 바이든을 지지하는 유명인사 상당수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 사실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온라인에서 돌고 도는 음모론에 있어서라면, 큐어넌은 압도적이다.
BBC 조사 결과 큐어넌은 올해에만 이미 1억 건 넘는 소셜미디어 댓글과 공유, ‘좋아요’ 등을 만들어 냈다. 이런 추세는 지난 여름 들어 더 가속화됐다.
큐어넌의 가장 큰 활동 장소인 페이스북에선 4400만 건의 댓글과 공유, 좋아요가 달렸다.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그룹 기록의 3분의 2에 달하는 숫자다. BLM 운동은 전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다.
가짜뉴스를 단속하려는 소셜미디어 업체들의 초기 움직임은 거짓 정보의 확산 속도를 조금 늦췄다.
그러나 음모론 지지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해시태그(#)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음모론 강성 신봉자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말을 퍼뜨리고 있고 그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지난 3월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의 설문 조사에선 미국인 4분의 3이 “큐어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지만 지난 9월엔 이같은 응답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9% 가량은 “큐어넌에 대해 매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9%, 작은 숫자지만 미국 인구를 감안하면 수백만 명에 달하는 수치다.
또 상당수 공화당 관계자들이 큐어넌의 주장들에 대해 공감을 표하거나 심지어 굳건한 믿음까지 드러낸 상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봉쇄령 등이 이같은 상황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큐어넌 인사들이 시민들의 공포, 불확실성과 의심을 악용했다는 것이다.
큐어넌 이론들은 코로나 음모론과 빠르게 뒤섞였다. 이는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는 신봉자들에게 일종의 ‘단순명료한 해석’으로 다가왔다.
극단주의 집단을 연구하는 서던빈곤법센터의 탐사 기자 마이크 에디슨 헤이든은 “큐어넌은 상당히 만연해 있는 조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컬트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큐어넌이 꽤나 성공적으로 서서히 주류에 편입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같은 음모론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도 모르는 채 믿음을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년 간 음모론을 연구해 온 미국 시라큐스대학 휘트니 필립스 조교수는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정부 내 트럼프 대통령을 깎아 내리려는 그림자 정부가 있다’고 믿는 굳건한 집단이 됐다”고 말했다.
큐어넌 지지자들은 본인들이 직접 음모론을 만들어내진 않지만, 음모론 확산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Q세대?
다시 제이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언론인이기도 한 그는 이런 음모론들이 친구들의 정치 참여 방식에 영향을 줄까 우려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그들의 투표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이미 일부 친구들은 민주당이 ‘악’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구원자’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제이드는 “일부 사람들은 ‘엘리트 집단’의 통제 아래 자신들의 투표가 결과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