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스톱을 치면 치매에 안 걸리나요?”
우스갯소리로 혹은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이 정말 많다. 하필이면 왜 고스톱일까? 고스톱 치지 말라고 말리는 아내에게 핑계를 대기 위해 노름꾼이 지어낸 말은 아닐까? 물어보는 사람은 정말 많지만 이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하는 의사는 없다. 어떤 전문가는 효과가 없는 낭설이라 하고, 어떤 전문가는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 말한다. 왜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는 걸까? 왜냐면, 고스톱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나 논문이 없기 때문이다. 고스톱으로 치매 연구를 하는 것은 연구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고, 분석도 힘들다.
고스톱은 보드게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보드게임이란 카드나 게임판, 주사위 등 물리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진행하는 게임이다. 고스톱은 화투라는 일종의 카드를 사용하니 카드를 이용한 보드게임이다. 그렇다면 보드게임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보고 있다. 프랑스에서 이뤄진 한 연구결과 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즐기지 않는 사람에 비해 15% 정도 치매에 걸릴 위험이 낮았다.
보드게임은 인지력 향상에 매우 유용하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규칙을 배우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를 해야 하므로 의사소통을 도와주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을 기른다. 이겼을 때 승리의 기쁨을 함께 공유하고 졌을 때 서로 위로할 수 있게 되며, 게임을 통해 서먹했던 사람도 친해질 기회를 갖게 된다. 이미 말한 것처럼 치매 발병의 위험을 15% 감소시켜주는 데다 재미있기까지 하니 보드게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럼 고스톱도 보드게임이니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해야 하지 맞는 것 아닐까? 그런데 왜 의견이 갈리는 걸까? 어떻게 고스톱을 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고스톱은 수많은 인지가 작용하는 게임이다. 일단 점수를 세려면 숫자를 알아야 하고 그림을 매칭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게임의 규칙을 외워야 하며 깔려 있는 패와 내가 가져온 패, 남의 패를 살펴 전략을 짜야 한다. 같은 패가 3장이 나와 흔들었으면 나중에 점수 계산할 때 흔든 걸 잊어버리지 않아야 2배를 받을 수 있다. 고스톱의 백미는 바로 ‘고’와 ‘스톱’에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더 큰 이익을 추구할 것인지 현재의 수익에 만족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판에 펼쳐진 모든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고스톱만큼 인지를 많이 사용하는 게임도 드물다.
하지만 고스톱을 하루에 10시간씩 친다고 해서 치매에 안 걸린다고 볼 수는 없다. 고스톱과 같은 게임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이른바 ‘자동화’가 이루어진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내야 할 패가 감으로 느껴진다. 재미있는 게임도 한두 시간이지, 계속 치다 보면 재미도 흥미도 없어진다. 그냥 할 일이 없어 집중하지 않고 치는 고스톱이 뇌에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사회성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서로 고스톱을 치며 농담을 하고, 웃고 떠드는 그 시간은 뇌에 자극을 준다. 고스톱판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새로운 인맥을 쌓고 좋은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인지능력 향상을 위해 보드게임을 할 때 중요한 것은, 게임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 웃고 떠들며 교류해야 한다. 묵묵히 앉아서 패만 넘기는 게임은 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고스톱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고스톱을 어떻게 치느냐가 중요하다. 가족들과 어울려 즐겁게 치는 고스톱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심심풀이로 하는 고스톱은 다르다. 심지어 인터넷 게임으로 하는 고스톱은 사회적 교류가 전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인터넷으로 고스톱을 친다고 치매가 예방될 거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고스톱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 단, 남들과 어울려 즐겁게 해야 한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고스톱만 치지 말고 다른 보드게임도 하길 바란다. 뭐든 새로운 것은 뇌를 새롭게 만든다.
출처 : 천안아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