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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단편소설] 뜸북새 오빠 1장

1장.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얄궂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기에 매사에 손해만 보고 살아야 할 바보

같은 여자라고 부르며 아주 가엾게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가미사마(神)가 내게 내

려준 준엄한 명령으로 생각하며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장애인인 시누이와 총상으로 인해

척추를 다쳐 절룩 거리는 남편을 포함한 네 명의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여가장(女家長)으로

당당하게 살아왔다.

3년 전부터 가벼운 치매증상을 보이던 시어머니에게 극심한 우울증이 발병하자 정신과 의

사를 매달 한차례씩 방문 해 약을 받아 온다. 어린애처럼 내 손을 잡고 따라다니는 시어머

니의 인생이 어찌나 불쌍하고 가련한지 나도 덩달아 우울해진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되

게 기쁜 날이었으며 운수 좋은 날이었다.

“김정선(金貞善) 할머니, 오늘은 뭔가 즐거운 일이 있나보죠? 웃으시는걸 보면.” 정신과 의

사(강석호. 姜石浩)도 훤하게 덩달아 웃으면서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시어머니는 수줍은 듯이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살포시 나비의 날개처럼 입술을 출렁거리는

것을 나는 똑똑히 곁에서 보았다.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한국가요를 집에서 들려 주라고 해서 여러 가

지 테이프를 틀어 줬는데 , 며칠 전 부터 시어머니는 뜬금 없이 ‘ 뜸북뜸북, 뻐꾹뻐꾹’ 소리

를 내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군요.”

“하나꼬(花子)상? 한국말로 그건 새 소리입니다.”

“새? 그럼 서로 다른 샌가요?”

“예, 뜸부기는 여름에 논에서 우는 새로 다리가 길고 검누런 갈색으로 잘 날지 못하지요.

반면 뻐꾸기는 산이나 산림에 살며 훨씬 크고 초 여름에 남쪽에서 날아 오죠.

그런데 시어머니가 새소리를 내다니? 잘 관찰해 보소, 언제 그런 소리를 내는지. 하나꼬

상!“

우울병 환자가 음악을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일시적으로 환청(幻聽)이 생길지도 모

른다고 정신과 의사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처방전을 써 내게 주었다.

“약은 제 때 먹어야하며 잠은 충분히 자야 정신병은 좋아 집니다. 아시겠죠? 하나꼬상!”

“예” 나는 90도로 목을 숙여 인사를 한 후 시어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친정어머니(준꼬 다카하시)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누이(김선화,金善花)는

스파게티를 탁자에 가지런히 준비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애인들이 만든 음식을

먹다보니 너무나 감동이 돼 눈물이 뺨으로 흘러 내렸다.

*

나는 금년 50세가 된 간호사로 일주일에 3회, 집근처에 있는 K 신장 투석 센터에서 12시

간 씩 일해 온지 어느듯 30년이 된다

*

내가 남편 김선우(Steve Kim)와 결혼하게 된 것은 가미사마의 운명적인 명령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바보같은 여자라고 비웃었으며 일본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한국 사람에게 손해

보는 결혼을 하느냐?’라고 거세게 항의를 하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된 것은 16년 전인 1999년 봄, 미국신문에 실린 서글픈 기사가 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신문에 소개된, 롱비치 경찰국 소속의 경사(Sergent), 스티브 킴(김선우)과 그의 가족에 대

한 기사가 안타까웠었다.

당시 38세의 한국계(1.5세) 경찰관 ‘스티브’는 롱비치 시내에서 암 활약 하던 마약 갱단을

소탕 하던 중 날아온 총탄에 등 허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쓸어졌었다. 응급차에 실려 롱비

치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척추 깊숙한 곳에 실탄이 밖혀 있어 세 시

간에 걸쳐 수술을 한 후 목숨은 건졌으나 다리가 마비돼 걸을 수가 없어 불구자가 됐다.

애처러운 것은 그의 누나는 뇌성마비와 루마치스성 관절염으로 인해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어려서부터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중증 장애인이기에 스티브 경사는 결혼도 하지 않고 누

나를 위해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살아왔다. 이런 형국에 그마저 총상

을 입고 불구자가 됐으니 앞으로 이들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니 누군

가, 독지가의 도움을 기다린다고 신문 기사는 강조했다. –

이 기사를 읽으면서 친정어머니가 가끔 한숨을 쉬면서 내게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

-내가 살리나스(Salinas)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꽃 농장을 하면서 온 가족을 먹여 살리

던 외할아버지가 농장에서 사고로 인해 죽었을 때 우리 온가족은 어쩌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었다.

외할아버지가 없으면 우리 모두는 굶어 죽는다고 생각 했었다.

“그래도 같은 동족인 일본 사람들이 곁에 살고 있었기에 우리들은 목숨을 이어갈 수가 있

었지. 그게 인연이 돼 우리를 도와준 ‘그 집 아들과 내가 결혼’을 했었지. 그게 바로 네 아

버지(시게쓰 고바야시)였어. 불행이 오히려 우리를 살려준 셈이였지. 네 아버지. 고마웠지.

같은 동족이라는 것이 그토록 좋은 거 였어.”-라고.

*

갑자기 불행의 늪에 빠진 스티브를 위로해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나는 롱비치에 사는

스티브에게 ‘용기를 내라’, ‘희망을 잃지 말라’ ‘당신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다’라

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근히 그로부터 올 답장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었다.

나의 자존심이 상했으나 그보다도 답장을 보내지 않는 스티브의 근황이 더 궁금했다.

‘왜, 답장이 없을까? 편지를 못 받았나? 아니면 어머니 말대로 무식한 한국사람인가? ’ 나

는 마음의 동요를 억제하고 또 다시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역시 답장이 없었다. 일본사람

들이 흔히 하는 인사의 편지로 종이학을 접어서 여러차례 보냈다. 역시 답장이 없었다.

‘답장이 없네? 왜?’ 궁금증은 더 더욱 심해져 보내게 했다. 답장이 올 때까지….

생각해 보면 내가 롱비치 대학에 다닐 때, 잘생겼다는 소문으로 인해 수 많은 연애 편지를

남학생들로부터 받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외롭

게 사는 어머니와 평생 같이 살겠다고 맹세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나꼬? 너, 결혼도 하고 가정도 가져야지. 늙기 전에 결혼 하거라. 내 걱정 말고. 나, 혼

자 살아도 돼. 너만 행복해 진다면.”

어머니는 여러차례 눈물까지 흘리며 충고했으나 나는 어머니와 죽을 때까지 같이 살려고 토

렌스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 내가 오늘 어쩌자고 총탄에 맞아 척추 장애자가 된 한국인 경찰관에게 답장도 없는

편지를 보내다니, 나 스스로가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으며 자존심이 구겨진 셈이었다.

일 년이 돼도 답장을 받지 못하자 은근히 부화가 솟아 나는 엉뚱하게도 롱비치에 사는 그

의 집을 예고도 없이 불숙 방문했다.__

내가 다닌 롱비치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교적 큰 집이었다. 집 앞에는 훌쭉 치

솟은 야자 나무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으며 부채 같은 팜트리가 문 앞에서 부채질을 하는

듯했다. 지팡이를 집은 스티브 경관이 나를 맞았으나 반갑다는 말도 그동안 보내준 편지에

대해 별로 감사하는 표시도 없었다.

“받은 편지, 고맙기는 하나 부담이 됐습니다. 한국인 이민자로 불구자가 된 것도 남에게

말하기 힘들지요. 그런데 내게는 나보다 더 상태가 나쁜 장애인 누나가 있습니다. 평생 제

가 보살펴야 할 누나입니다. 게다가 배우지 못하고 과부가 돼 근근히 살아 가는 어머니도

제가 책임지고 사는 주제에 한가로이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

예 대답을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지요.“

장애자인 누나와 능력 없는 어머니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립적으로 모시고 살겠다

는 그의 생각은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적극적으로 편지도 보내고 그의 집으로 찾아 가곤 했다.

“더 오시면 안 됩니다. 하나꼬 고바야시 님. 그리고 아다시피 저는 한국인 1.5세입니다.”

그는 얼굴을 붉혔다.

“저는 일본인 2세입니다. 그게 무슨 큰 이유가 되나요? 일본 사람은 안 되나요? 하나꼬 고

바야시라는 이름이 싫으세요? 스티브씨? 저도 어머니를 모시고 평생 혼자 살려고 결혼도 않

고 노처녀가 됐지요. 스티브씨 처럼…..”

“……..” 그는 대답이 없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쥰꼬)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하나꼬? 한국사람은 안돼. 우리 일본사람하고는 다른 사람들이여. 물과 기름같아. 그들은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여. 우리 일본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을 그들은 모른단 말야. 이차대전

(대동아전쟁)중에 우리 일본 사람들은 강제로 잡혀 콜로라도 그라나다에 있는 아마체 수용

소에서 3년간 온갖 고생을 했었지. 그때 너의 할아버지는 미군에 입대해 멀리 이태리 전선

에 갔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살아왔었지. 물론 재산도 모두 압류 당해 살리나스로 돌아 왔

을 때, 우리는 거지 꼴이었어…..

하나꼬? 한국 사람들은 기회 주의자들이었어. 살리나스에 남아서 우리 꽃 농장을 통째로 먹

으려고 했었어…….“

“어머니? 나는 한국사람들을 이해 하려고 해요. 그들은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고통을 받았

다고 알고 있어요. 어머니…”

“그래서 네가 그것을 보상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을 돕고 싶어요. 무조건.

2장에서 계속…

저자: 연규호 (소설가. 의사) 현재, 미주한국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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