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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단편소설] 뜸북새 오빠 2장

2장

여자인 나는 정작 ‘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스티브는 비록 불구

의 몸이었으나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장애인 누나를 성심껏 도와주며 외삼촌이 경영하는 세

탁소에 가서 막 노동을 하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있었기에 집안이 밝았다.

스티브가 어떻게 미국에 왔는지를 알게 됐다.

-한국, 여주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죽으면서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자 먼저 미국에 온 외삼촌

이 이민 초청해 1979년 17세의 나이로 미국에 왔다고 했다. 비록 외삼촌이 도와 준다고는

하나 중년의 어머니는 세탁소에서 밤 늦게 까지 일을 하여 스티브를 학교에 보냈으며 누나

는 특수학교에 보냈다고 한다.__

롱비치 대학과 경찰학교를 마치고 1984년 이후 스티브는 롱비치, 토렌스 가데나등지에서

경찰관으로 잔뼈가 굵었다. 1999년, 35세, 경사(Sergent)로 롱비치 경찰서에서 근무를 하던

중 흉추에 총탄을 맞고 장애자가 돼 정부에서 주는 연금과 누나에게 나오는 생활보조금 그

리고 세탁소에서 받아 오는 적은 월급으로 세 식구는 근근히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도 그가

사는 집은 방이 4개에 화장실이 4개가 딸려 있으며 집 입구가 평평해 휠체어가 들어오기

쉬웠다.-

*

“이젠 스티브의 집에 가지 마라!” 어머니는 마침내 제동을 걸었으나 오히려 기름에 물을

붓는 격이 됐다.

“어머니? 아무래도 스티브네 식구들은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두 명의 장애인이 너

무나 안타까워. 가엾어.”

“뭐라고? 너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게다가 스티브는 장애자인데.

네 나이가 지금, 33살이야, 아직도 좋은 나이야, 그러니 안 돼!“ 어머니는 눈물로 나를 만류

했다.

“어머니? 나, 가끔 가미사마의 명령을 듣고 있어요. ‘누구든지 불쌍한 사람에게 물 한 컾

을 주어도 나, 가미사마를 위해 한 것이니라.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라고요.”

“그래도 안 돼! 하나꼬! 제발.” 어머니는 마침내 엉엉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의 집을 찾은 지 1년 3개월, 나는 마침

내 여자인 내가 남자인 스티브에게 먼저 청혼을 했다.

“하나꼬 상? 지금 무어라고 했습니까? 결혼이요? 말도 안 되지. 나는 장애자요 수입도 없

소. 게다가 내 누이는 중증 장애자로 더 많은 손이 필요한데. 안됩니다. 내가 돌봐야죠. 나,

당신의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아요, 하나꼬 상! 못들은 것으로 알고 그냥 친구로 대해 주소.”

스티브는 여러차례 사양 그리고 또 사양했으나 집요하게 청혼하는 나와 마침내 말도 안 되

는 결혼을 하게 됐다.

“말도 안 되지. 죽 쒀 개를 주지. 한국사람에, 장애인에, 돈도 없고 게다가 누나마저 장애

인인데. 이건 아냐! 하나꼬야? 네가 바보 멍텅구러기냐?.”

어머니는 화가 나서 씩씩 거리며 숨을 몰아 쉬다 방바닥에 쓸어졌다. 구급차에 실려 응급

실로 가니 스트레스로 오는 홧병으로 휴양을 잘해야 산다고 하며 집으로 돌려 보냈다.

결국 우리는 롱비치에 있는 작은 미국교회에서 ‘쉬쉬!’ 입을 막으며 가족들만 참석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식구들이라고 해봐야 장애자 누나,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그리고 외삼촌댁

식구들 그리고 일본인 친구 몇 명이었다.

내 친구들은 감정을 참지 못하고 바보처럼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느냐고 울며불며 나를 붙

잡고 일본말로 떠들면서 엉엉 울었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불쌍한 어느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오히려 즐거

웠다. 그 상대가 한국인 경찰관 스티브이기에 더 기뻣다.

결혼 후 나는 아애 친정어머니를 데리고 롱비치 스티브의 집으로 이주했다.

역시 일본 어머니는 강했다. 처음에는 반대를 했으나 일단 결혼을 하자 친정어머니는 태도

를 바꾸고 모든 것을 희망적으로 생각하며 대했다.

*

결혼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장애인 스티브보다 시어머니와 어떻게 해야 좋은 관계를 가질

지, 그것이 더 힘들었다.__

-과부로 홀로 살아 온 시어머니는 생각밖에 말이 적었으며 화를 내지 않았다.

매주 교회에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같이 따라 갔다. 한국말로 하는 예배의

뜻을 알 수가 없었지만 ‘가미사마’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알게 됐다.

시어머니는 뜻밖에도 친정어머니와 잘 지냈다. 친정어머니를 마치 동생 대하듯이 했다. 시

어머니가 특별히 내게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귀향(歸鄕)”이었다.

“고향에 가고 싶어. 경기도 여주(麗州)라는 곳이지. 아주 아름다운 곳이야.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어. 내가 죽으면 꼭 그곳에 묻어 줘, 하나꼬! 부탁해.” 시어머니는 여러차례 반복

해서 내게 부탁을 했는데, 정작 나는 여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세월을 보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시어머니는 고향을 이다지도 그리워 할까? 내 친정어머니는 고향에

가고 싶다는 부탁은 안하는데.

시누이를 통해 들은 한국 동요가 실감나게 좋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 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한국의 고향과 내가 어려서 살았던 북가주 살리나스에 펼쳐진 꽃 농장이 내 눈에서 영화

처럼 떠오른다.

-초여름, 줄을 지어 빨간 딸기를 따던 히스페닉(멕시코 사람들)이 10살 된 소녀인 나를 향

해 손짓을 하더니 탐스러운 딸기를 한 웅큼 집어 준다. 일본 사람들이 주인이었기에 마치

아씨를 대하듯 했다.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어찌보면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들은 아주 비슷한 정서 속에서 살아 왔다고 느꼈다.

시어머니의 얼굴에 붉은 찔레꽃이 활활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어머니? 꼭 모시고 한국, 여주에, 아니 고향에 다녀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고맙다. 아가야. 너의 이름 그대로 네 몸에서 붉은 동백꽃이 피를 토하는구나. 고맙다. 하

나꼬…..”

시어머니는 모처럼 내게 감사의 표시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반면 친정어머니는 그녀가 살았던 ‘살리나스’와 콜로라도‘ 보다, 멀리 일본 규슈 남단, ’가

고시마’를 고향이라고 부르며 그리워 했다.

파란 바닷물이 넘실대며 맞은 편 섬에 있는 사꾸라지마 활화산이 가끔 분출하던 가고시마

가 멀리 미국 땅에서 더 인상적으로 그립다고 했다.

한국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으나 아주 간단한 단어들 뿐이었기에 속 깊은 말의 뜻은 모

르고 살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척 힘든 가정이었으나 조금 먼저 양보를 하니 즐거운 가

정이 됐다.

남편의 사랑은 극진했다. 비록 척추를 다쳐 지팡이를 집고 다니긴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넉근히 해내었다. 그러나 바라던 임신은 되지 못했으나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결혼한 것을 조금도 후회 하지 않았다.

*

3년 전, 시어머니가 77세가 되면서 치매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까운 기억은 밥 먹듯이 잊어버리고 오래된 옛 기억도 점점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감정

의 조절이 약한지 자주 화를 내기도 했다. 더 무서운 것은 음식을 조리한다고 개스 불을 켜

놓고 깜빡하다보니 집안에 화재가 날 수도 있었다. 가끔 대 소변도 실례를 하는가 하면 음

식을 해 주었는데 밥을 주지 않아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어머니가 치매 증세가 있어. 하나꼬상! 나도 알고 있소. 정말 미안해요. 이런 어려운 일을

당신에게 시키다니. 누나도 그렇고. 내가 혼자 해야 할 일을.” 남편은 정말 미안하다고 하며

안스러워 했다.

엎친데 곂친 격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오던 남편이 갑작스레 가슴이 아프다고 하더니 응급

차에 실려 롱비치 병원으로 갔다.

관상동맥이 3군데 막혀 대 수술을 하였으며 맥박이 불규칙해 심박동기계를 가슴에 부착했

다. 그의 나이 겨우 50세 내 나이 47세인데.

결국, 내가 해야 할 임무가 갑절로 늘었다. 다행히 친정어머니가 음식을 마련해 주고 정부

에서 보내주는 도우미가 아침 저녁으로 들려 주어서 우리는 살아 갈 수가 있었다.

증세가 악화되어 시어머니를 모시고 정신과 의사, 강석호씨를 찾기 시작했다.

“치매가 꽤 진행이 됐습니다. 혈액검사, 뇌 MRI 그리고 신경과에서 뇌파 검사도 하세요. 그

리고 이 약을 아침 저녁으로 드리고 매달 한 번에서 두 번은 들려 진찰을 받으셔야 합니

다.”

치매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자 시어머니의 병세는 많이 호전됐다.

*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신장환자의 혈액 투석 근무를 하고 있는 데, 친정어머니로부터 내

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나꼬! 스티브가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하며 쓸어졌어. 911 응급차를 불렀는데, 하나꼬!

스티브가 이미 죽었어. 빨리 롱비치 병원으로 가 보거라.”

친정어머니의 다급한 전화에 이어 이번에는 롱비치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하나꼬 고바야시, 킴? 당신의 남편 스티브 킴은 DOA(병원에 오기 전에 이미 죽음)로 검

시관에게 넘겨져 부검을 하게 됩니다. ”

“예? 죽었다고요?”

“그렇소.”

나는 예견은 했었으나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예상 못했으며 죽기 전에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다. 그리고 허망했다.

롱비치 지방 신문에 남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14년 전에 마약. 깽 단의 총격으로 척추 장애를 입었던 스티브 킴 경사가 오늘 관상동맥

질환으로 사망함. 일본인 아내의 헌신적인 간호로 그는 즐거운 가정 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장례는 롱비치 경찰국에서 담당하기로 함.’-

3장에서 계속…

저자: 연규호 (소설가. 의사) 현재, 미주한국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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