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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뉴스|미얀마] ‘내가 죽으면 딸을 부탁해’… 미얀마 거리에 나선 사람들

의대생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미얀마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설명,의대생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미얀마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미얀마 유혈사태가 갈수록 악화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계속 거리로 나서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달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정부를 전복시키자 미얀마 시민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지도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불복종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500명이 넘는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실제 사망자 수는 집계된 수치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는 30일(현지시간) 미얀마에 주재하는 외교관을 비롯한 비필수 업무 공무원과 가족들에 대한 철수 명령을 내렸다. 앞서 노르웨이 정부 또한 미얀마에 머무는 자국민들에게 미얀마를 떠날 것을 촉구했다.

한편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인 카렌민족연합(KNU)는 같은날 미얀마 군부가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KNU는 자신의 영역을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청했다.

딸의 미래를 위해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여성 이미지

나우는 국민총파업위원회 대표다. 그는 이번 시위에 동참하는 이유에 대해 딸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카렌이라는 미얀마의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저한테 시위를 하는 것은 낯설지 않아요.

지금 시위대는 아웅산 수치와 윈 민트 대통령의 석방과 2020년 총선 결과를 투명하게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 같은 소수민족은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가야 해요. 우린 미얀마에 속한 모든 국적을 포용하는 연방 민주 연합 설립을 꿈꿉니다.

군부는 오랜 세월 분열과 정복 전략을 무기로 통치해왔습니다. 이에 맞서 모두가 하나로 합쳐진 것 같아요.

제게는 한 살배기 딸이 있어요.

딸이 제 행동으로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딸 때문에 시위에 참여했어요. 아이가 저처럼 독재 정권 아래서 자라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위에 참여하기 전에 남편에게 제가 죽거나 체포되면, 아이를 잘 봐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린 우리 스스로 이 혁명을 마무리 질 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짐을 넘기지 않을 겁니다.

의사의 탈출을 돕다

난다는 미익 마을에 있는 한 병원에서 근무한다. 의료진은 미얀마 시위의 최전선에 있다. 하지만 최근 이 마을의 의료진들은 군에 끌려갈 것을 우려해 숨어야만 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

3월 7일 밤, 통행 금지 시간이 시작되기 전이었어요.

전 어둠을 틈타서 정형외과 의사와 그의 가족을 차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이들을 옮겼습니다.

바로 하루 전 정부 관계자가 우리 마을 병원에 연락해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의료진의 이름을 물었기 때문이죠.

“왜 이들의 이름을 물었을까?”, “의료진들이 끌려가면 어쩌나?” 병원 사람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의사들은 일단 몸을 피하기로 했습니다. 붙잡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웠으니까요.

그렇게 전 의사들의 탈출을 돕는 일을 맡게 됐습니다.

제 차는 충격과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한 의사는 “왜 저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우리 같은 의료진은 범죄자처럼 숨어야 합니까?”라며 분노를 삼켰습니다.

저도 속이 타올랐습니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의사를 숨겨주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으니까요.

당장 내일부터 우리 마을에는 의사가 몇 명 없을 겁니다.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손, 팔, 머리 등을 다친 시위대를 봐줄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할 것입니다.

특히 산부인과 의사는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당장 출산해야 하는 여성분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번 민주화운동에서 의료진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우리 곁에 없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시위에 나서다

마웅은 양곤에서 활동하는 영화제작자다. 그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매일 기록하기로 했다.

시위대 속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 중인 남성

2월 28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양곤의 바르가야 거리의 최전방에 있었고, 바리케이드 뒤에 서 있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어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병과 캔을 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죠.

100여 명의 사람들이 빠르게 우리를 향해 다가왔어요. 처음에는 이들이 경찰인지 군인인지 구별조차 되질 않았죠.

그 어떤 경고도 없이 그들은 우리에게 소리 폭탄, 총탄, 가스 폭탄을 쏘기 시작했어요.

전 미리 봐뒀던 탈출로로 미친 듯이 달려갔어요. 그런데도 촬영은 멈추지 않았어요. 다행히도 우리들 대부분은 그 장소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시위 현장에 나갈 때, 헬멧과 내열 장갑을 꼭 챙깁니다.

최루탄이 날라오면 가능한 한 다시 저들에게 던져지려고 해요. 하지만 보통 최루탄을 젖은 담요로 덮거나 물을 부어 끕니다.

많은 사람이 값싼 마스크를 쓰다 보니 최루가스를 완벽하게 차단하질 못해요. 얼굴에 묻은 최루가스를 씻어내는 데 콜라가 최고 입니다.

영상제작자이자 시위대로서, 전 시위 현장에 나가서 매일 짧은 영상을 만듭니다.

돌아와서 찍은 영상들을 보면, 우리의 저항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다시 경험하게 돼요. 평화로웠던 시위가 이제 우리의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시위로 바뀌었어요.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 같습니다.

날 숨겨준 은인

연구원인 피요는 양곤시의 한 지역인 산차웅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했던 200명 중 한 명이었다. 군부의 진압으로 이들은 시위 현장을 떠날 수 없었고, 그 자리에서 최소 40여 명이 체포됐다.

군부를 피해 집에 갇힌 시위대

3월 8일이었어요. 오후 2시쯤이었던 것 같아요. 보안군이 등장했고 우리는 궁지에 몰렸어요.

그러자 한 집주인이 문을 여시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하셨습니다. 그렇게 저희를 집에 숨겨주셨어요.

보안군은 밖에서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총 7명이 그 집에 숨어있었어요.

대치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집주인은 저희에게 음식을 내주셨습니다.

저녁 6시 30분이 지나도 보안군이 밖에서 지키고 있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다급해지기 시작했어요. 다른 탈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주인께서 숨어서 탈출하기 안전한 길을 알려주시고 또 어떤 집에서 시위대를 숨겨주는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전 동네 주민처럼 보이기 위해 사롱으로 갈아입었어요. 가지고 있던 모든 짐을 두고 대신 현금을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집으로 옮겨 안전하게 그날 밤을 넘겼습니다. 아침이 되자 보안군이 떠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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